설을 쇠면서
임공이산
설날에 주어진 나흘간의 연휴가 끝나는 마지막 날이다. 뉴스에서는 농어촌에서 도시에서, 고궁과 공원에서, 세시풍속을 즐기는 모습들을 화면에 담고, 민족대이동에 따른 고속도로의 상황을 시시각각 보도하고 있다.
고생스러우나마 저 귀성귀경행렬에 끼지 못한 죄스러움과 아쉬움을 가진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누워계신 선산이 있고, 부모님을 대신해 생가를 지키시는 큰형님 내외분이 계신 동네, 앞집 옆집 골목골목이 일가친척들로 이루어진 고향을 명절에 맞춰 가본지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세상이 변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세시풍속도 변하게 마련이다.
유구한 역사의 집성촌임에 마당 가득 차례꾼들로 넘쳐났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추억으로만 남고, 여남은 집 남은 집안들끼리 오붓한 차례를 잘 지냈다고 큰형수님께서 안부전화에 전해주신다.
서울의 좁은 우리 집에서도 반가운 손님을 치렀다.
큰딸 내외와 날잡아놓은 예비 둘째사위까지 찾아와서 덕담과 함께 명절 음식 차려진 술상을 함께 나누었다.
큰딸은 남산만한 뱃속에 외손녀를 품고 왔는데, 그 외손녀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간 탓에 경주시댁엘 가지 못하고 아가의 외갓집에 온 것이다.
금년엔 우리 집에도 두 번의 큰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첫 손녀가 탄생하므로 비로소 나도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요, 또 한 번 가슴을 허전하게 하면서 둘째딸은 시집을 갈 것이다.
설을 쇤다는 것은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새로운 짝을 찾아 새 가정을 꾸미고, 나와 아내는 또 장인 장모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그렇게 늙어 가는 것이겠다.
요즘 100세 시대가 도래 했다는 구성진 노랫가락이 유행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노후대책 전혀 없이 무슨 재주로 마흔 그릇의 떡국을 더 먹고 마흔 번의 설을 더 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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