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임공이산
나이가 들수록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것들도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텔레비전에서 즐겨 보는 ‘자연인’이란 프로가 있습니다. 산중에서 홀로 살아가는 중년 이상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일과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사연도 각각입니다만 모두가 제2의 산속 인생이 즐겁고 보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잃었던 건강을 찾은 분, 실패한 사업과 배신당한 인간관계 등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마음에 치유가 되었다는 분, 도시생활은 적응하지 못했으나 자연 속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입니다.
능청스러운 각각 두 사람의 진행자 코미디언과 함께 억지스러운 연출 없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자연인들의 일상을 따르다보면 여러 가지가 불편한 외딴 산속에서도 자연과 벗하는 즐거움이 부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누군들 아픔과 상처 하나 없이 순탄한 길만 걸었겠습니까만, 자연인들이 털어놓는 속마음을 들으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떠나온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헤어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회한은 진한 공감을 가집니다.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세속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된 사람들과의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며 사람의 냄새와 따스한 정이 더 그립게 되는 모양입니다.
지독한 외로움에 빠지게 되면 비로소 인생이 뭔지 산다는 것이 뭔지 깊이가 생기는 모양입니다.
저도 어떨 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종종 일어납니다.
현실을 도피해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평생을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눈앞에 닥친 실상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20여년을 운영하던 카페를 닫고 보니 사라진 세월만 허무합니다.
재 창업을 하려니 꼬박꼬박 바쳐야 할 임대료가 걱정되고 포화상태에 이른 자영업의 시장은 점점 더 전망이 어둡고 위험하기만 합니다.
노후대책이 전무하니 아직은 더 일을 해야만 하는데 일자리 벽은 아득하게 높습니다.
시니어,취업,창업,교육, 중장년,고용센타, 고용촉진,일자리,안내소, 기타 등등을 찾아 헤매는 자신이 한심스럽습니다.
요즘엔 뉴스를 접하다 보면 그 일자리를 찾는 의욕마져 상실되어버립니다.
잘 난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개돼지 취급까지 받을 땐 모멸감에 얼굴 까지 화끈거립니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고 존귀하다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봅니다. 직업은 모두가 소중하고 귀천이 없다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봅니다.
계층과 계급,갑과 을은 다르며 주인과 종이 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황금수저 물고 나신 3세 재벌 정머시기씨는 운전기사를 노예 다루듯 했다고 하고, 대통령 수석보좌관 우머시기 나리께서는 수십억부동산거래탈세, 차명보유, 부실인사검증, 자식의 꽃보직 병역특혜, 기타 등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나 같은 사람은 자괴감만 가득 듭니다.
경상도 양반촌 성주읍내에 군수도 군민도 모르는 사이에 싸드란 미국산 기지가 들어서게 되었다고 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성주의 유림회 어른들이 단체로 도포에 갓을 쓰고 서울에 올라와 청와대와 국회에 상소문을 올렸답니다.
삼복더위에 의관을 갖추고 맨바닥에 사배씩 절까지 하면서 읍소했다니 지금이 어느 시대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는지? 도대체가 "뭣이 중헌디?"라고 묻고 싶습니다.
"나랏일 걱정 말고 주제 파악이나 하세요. 일자리 하나도 못 구하는 백수 주제에 무슨..... 도대체가 뭣이 중헌디!!!"
아내의 핀잔을들으면서 슬쩍 물어 보았습니다.
“ 나도 저 어디 산간오지로 들어가서 자연인이 되고 싶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아이쿠 듣던 중 젤 반가운 소리요. 아무도 잡지 않을 테니까 빨리 사라져 주세요.”
큰 맘 먹고 배낭을 쌌습니다.
우선, 옛날부터 은자들이 많이 은거했었다는 가까운 청계산을 찾아서 골마다 샅샅이 누볐습니다.
망국의 한을 안았던 고려말의 충신 이색과 조윤을 비롯 무오사화의 정여창과 말년을 청계산 자락에서 보낸 추사김정희 등등 유명한 선인들이 은거했었다는 청계산입니다. 특히 끊어졌던 선맥을 이은 근현대 한국불교의 중흥조 경허스님이 동진출가를 했던 곳이라고도 합니다.
헤매고 구하면 얻으리니.........
저도 큰 깨달음을 얻어 자연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제가 은거할 적지 적소를 찾았습니다.
두구머리산!
방배동 새우촌 공원을 안고 있는 아담한 산 그리고 그 아래! 그 곳은 자연인 임공이산의 은거지 처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