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의 후기
1, 영화 '밀정'의 모티브 황옥경부포탄사건
영화 밀정은 역사적 실제사건인 ‘황옥경부폭탄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주인공 송강호가 분한 이정출의 실제 인물인 황옥은 일제 강점기 경감 급에 해당하는 경부 계급의 일본경찰이다. 1923년 김상옥이 일으킨 종로경찰서 투폭사건 이후에 사건 관련자를 색출한다는 구실로 중국 톈진으로 가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을 만나고 의열단 단원 김시현 김재진 권동산 등과 함께 폭탄과 총기를 경성까지 밀반입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총독부, 매일신보,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을 폭파하려던 계획이 경찰의 밀정이었던 동지 김재진의 밀고로 실패하게 된다.
황옥은 재판과정에서 상부의 지시로 의열단에 접근하여 프락치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유죄를 선고 받는다.
묘한 것이 경기도 경찰부장 시로가미 유키치는 황옥이 자신의 작전에 따른 것이라 주장했고, 의열단의 김원봉과 김시현은 황옥이 의열단원이 맞다고 주장했다.
요건이 성립되지 않아 독립운동유공자로 등록이 되지 못했다지만 김원봉이 인정했다는 것에 무게를 두면 시로가미 경찰 부장까지 속인 그의 연기력은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감과 가출옥 재수감을 거치면서 해방을 맞이하고 반민특위, 조선독립운동사 편찬발기인으로 활동하다 한국동란 때 납북되었다. 이후의 생사는 모른다.
김상옥
2, 의열단
정의의 뜻을 뜨겁게 실행한다는 뜻으로 뭉친 의열단은 단장 김원봉과 신흥무관학교 출신 13인이 주축이 된 항일단체이다. 이들은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 중에서도 복장부터 멋스럽게 입었고 낭만까지 가진 엘리트들이었다니 누아르 영화의 소재로선 더 할 나위 없는 매력을 갖추었다고 하겠다.
의열단 공약 10조
1.천하에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기로 한다.
2.조선의 독립과 세계 만인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바쳐 희생하기로 한다.
3.충의의 기백과 희생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이 될 수 있다.
4.단의를 우선하고 단원의 의를 급히 한다.
5.의백 1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하게 한다.
6.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든 매일 1차씩 사정을 보고토록 한다.
7.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든 초회에는 필히 응한다.
8.죽음을 피하지 아니하여 단의에 뜻을 다한다.
9.일이 구를 위하여 구가 일을 위하여 헌신한다.
10.단의를 배반한 자는 학살한다.
제거해야 할 대상
1.조선총독부 총독 이하 고관
2.주조선 일본군 주둔군 수뇌
3.대만총독부 총독과 대만총독부 고관
4.매국적 인물
5.친일파 거두
6.적의 밀정
7.반민족적 귀족 및 대지주
3, 의열단원과 영화의 주요 실존인물
김원봉
영화에서 이병헌이 정채산으로 분한 인물이다.
1898년 9월 28일(음력 8월 13일) 경남 밀양읍에서 출생.
경성중앙학교 졸업, 신흥무관학교 자퇴, 황푸군관학교 졸업.
호 약산(若山)
별칭 최림(崔林), 김약산, 진국빈(陳國斌), 이충(李冲), 김세량(金世樑), 왕세덕(王世德), 암일(岩一), 왕석(王石), 운봉(雲峰), 김국빈(金國斌), 진충(陳沖), 천세덕(千世德), 김약삼(金若三) 이상의 여러 이름을 사용,
4개 국어를 구사, 신출귀몰하는 재주가 있어 김구 선생 보다 높은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이었으나 해방 이후 오히려 비참해진다.
1947년 3월 공산당원을 체포한다는 미명하에 이승만의 비호를 받고 복직 되었던 악명 높은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남로당 파업연류와 관련해 체포가 된다.
일본군을 덜덜 떨게 했던 천하의 의열단 김원봉장군이 화장실에서 바지도 못 올리고 노덕술에게 끌려가 따귀를 맞는 등 엄청난 수모를 당했다니 이런 통탄스러운 일이 또 있는가.
아나키스트였던 그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었으며 어느 쪽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했다. 완전한 독립을 위해 남.북간의 분단을 걱정하며 민족주의민주전선, 인민공화당, 조선민주청년동맹회장,등을 역임하다 1948년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했다가 4월에 월북하였다.
북한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등을 역임하다 김일성에게 정적으로 몰려 숙청을 당했다.
김원봉장군
한지 김상옥열사(1890.0105~1923,01,22)
박희순이 분한 김장옥의 실존인물
1917년 조선물산장려운동펼침
영덕철물상회 경영
동대문의 홍길동으로 불리면서 뛰어난 무예로 조선여자를 희롱하는 기마경찰을 제압하고 칼을 뺏음, 그 칼은 독립기념관에 전시
1919년 4월 혁신단을 조직하고 혁신공보를 발행
1920년 4월에 친일 민족반역자 수명을 사살하고 11월에 의열단에 입단
1923년 1월 조선총독암살을 계획하고 기획함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하 (이것이 유명한 김상옥폭탄투하사건임)
이후 일경에 수배를 받고 도피하던 중 은신처가 발견되어 400여명의 무장경관과 총격시가전을 펼침. 종로서 형사부장과 다수의 일경을 사살하고 11발의 총상을 입고서 최후의 순간 한 발의 권총으로 자결.
김시현
영화에서 공유가 김우진으로 분했던가장 매력적 캐릭터이다.
김시현(金始顯, 1983.6.9~1966.1. 3)자는 구화(九和), 호는 하구(何求)·학우(鶴右)로 안동시 풍산읍 현애리 358번지 출생.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법학부를 졸업,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 길림으로 망명하여 항일비밀결사인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였다.
1922년 김규식(金奎植)·여운형(呂運亨) 등과 같이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혁명단체대표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23년 의열단의 밀령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일제 식민통치기관의 파괴, 일제요인의 암살 등을 계획하고 경기도 경찰부의 황옥(黃鈺)과 제휴하여 거사하려다가 붙잡혀 징역 10년을 언도받았다. 1929년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길림에서 독립동맹을 조직, 활동하였다.
1931년 북경에서 활동하던 중 잡혀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압송되어 5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또다시 북경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42년 북경의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잡혀 투옥되었다.
1945년에는 일본헌병대에 잡혀 수감되었다가 광복으로 석방되었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고려동지회 회장, 전보통신사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민주국민당에 입당하여 고문으로 있다가 1950년 제2대국회의원에 당선 되었다.
김구선생 암살의 배후가 이승만임을 믿었고 전쟁 중 일어난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보고서는 이승만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1952년 6월 25일 임시 수도인 부산 충무동 6-25 2주년 기념식장에서 의열단 동지 유시태를 앞세워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암살을 시도했으나 권총의 불발탄으로 미수에 그치고 체포당했다.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형으로 감형되었다.
1960년 4-19 의거로 석방이 되고, 같은 해 민의원의원에 당선되었다가 5월 16일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보며 정계를 은퇴하고 말았다.
김원봉 보다 15세나 위인 김시현은 독일인 박사로부터 폭탄 제조법을 배운 동양최초의 시한폭탄 전문가이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정권이 들어서고도 여전히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꼴을 보고는 노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폭탄 테러를 계획했었다니 불우한 독립지사요 영원한 테러리스트였다.
이승만 저격사건 기도로 인해 독립유공자에서 조차 제적당하고 1966년 불광동 자택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면서 부인을 향해 “권동지 미안하오.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쳐 싸워 해방을 이루었지만 두 동강난 조국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가는 것이 한이오. 내 대신 조국통일을 위해 힘써 주시오.” 라는 유언을 남겼다.
현계옥
유일한 홍일점으로 한지민이 연기한 연계순은 실존인물 한계옥을 모티브로 했다.
타고난 미모의 기생출신으로 기록에 의하면 연인이었던 독립운동가 현정건(소설 운수좋은날의 작가 현진건의 사촌 형)을 따라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고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잡혔고 영화에서처럼 인두로 얼굴을 지지는 고문 끝에 죽었다. 영화에서는 송강호가 거적에 덮어 수레에 실어가지만 기록에는 시체를 찾아가는 가족도 없었다니 참으로 불우한 여인이다.
4,마치는 글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 영화 밀정은 재미는 물론이려니와 광복71주년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운 반성과 함께 의열단과 그 구성원들에 대해 공부를 해 보았다.
역사는 왜곡 편집 되어서는 안 된다.
내 선조 내 조상이라도 친일과 매국을 했으면 바로 쓰고 바로 배워야 한다.
독립투사들이 해방이후 이념에 따라 다른 길을 갔더라도 독립운동의 본질은 정확히 평가 되어야한다.
<1920년 4월 27일 위천 정태균의 집에 ‘불온 문서’가 배달되었다. 일제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하여 독립 선전, 독립자금모금, 독립군 파견 등을 벌인 사건을 밝혀냈다. 그리고 주남선(34), 주남수(30),형제와 고운서(34) 신도출(24), 장장현(31), 이갑수(38), 오형선(42)등을 체포하고 이덕생((21), 김태연(20),이사술(28),이성두(25)백기주(21),이태홍(25)한성진(25)등을 수배하였다.>
카메오 박희순이 독립자금을 만들기 위해 부호의 집에 국보급 불상을 팔려다가 위기에 처하는 장면을 보면서 94 년 전 고향 위천면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오버랩 된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중 후반에 이르는 저 청춘들은 얼마나 고초를 받았을 것인가.
고향 거창지역 만 해도 정태균 같은 거물급 친일인사가 있었던 반면, 의열단원으로 활약했던 남하면의 신병항을 비롯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열사들이 수백명에 이른다.
독립운동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광복 이후 반민족행위자들의 정리와 처벌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친일세력들이 득세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국치에 가까운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나,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하고, 이승만 국부 추대와 건국절을 외치는 반민족적 만행을 보면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김구선생의 기념우표는 거부되면서 박정희 기념우표는 발행이 결정되고,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교과서 국정화가 밀어부쳐진다.
우리의 무지를 탓하랴. 의열단의 뜻을 기리면서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 더욱 필요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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