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리는 소문에 수승대의 이름을 두고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문화재청에서 옛 이름인 수송대를 찾아 쓰고자 하니까 그냥 지금 쓰고 있는 수승대가 좋으니 그대로 두자는 등의 반대 의견들도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에서는 서울 성북동에 있는 성락원의 역사성 논란을 바로잡은 것을 계기로 전국 각지의 명승지와 별서정원 22개소 등등의 역사적 고찰과 변화과정, 명칭과 유래등을 고증하고 바로잡는 사업을 벌였는데 그 일환중에 수승대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수승대란 이름은 퇴계 이황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1543년 이른 봄날, 첫째 부인과 사별하고 재혼을 한 퇴계는 처남 권철의 집 영승리에 머물고 있는 장인 권질을 방문했다.
만나 본적은 없으나 서로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원학동 향리의 갈천 임훈(1500~1584)과 요수 신권(1501~1573)은, 멀리 안동 도산에서 온 퇴계 이황(1501~1570)을 초대하여 술자리를 하기로 약속했다.
갈천과 요수는 갈천의 부친인 石泉석천 林得藩임득번(1478~1561)의 서당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로 요수가 갈천의 누이동생에게 장가들었으므로 처남 매부 지간이다.
그런데 임금이 부르는 전갈이 왔다고 급히 떠나면서 퇴계가 시 한 수를 남겼다.
이에 요수가 답시를 쓰고 搜勝臺란 글씨를 바위에 새기면서 원래이름인 愁送臺 대신 수승대로 불리게되었다는 것이다.

여기 전해오는 세 분의 시를 감상해보자.
退溪李滉의 수승대 命名詩
퇴계이황의 명명시
搜勝名新換 逢春景益佳수승명신환 봉춘경익가
遠林花慾動 陰壑雪猶埋원림화욕동 음학설유매
未寓搜尋眼 惟增想像懷미우수심안 유증상상회
他年一尊酒 巨筆寫丹涯타년일존주 거필사단애
수승이라고 대 이름을 새로바꾸니
봄을 맞는 경치는 더욱 아름답구려
먼숲엔 꽃들이 피어오르고
그늘진 골짜기엔 잔설도 보이고
내 눈길은 수승대를 찾는데
마음속에 상상만 품어갑니다
다음 어느해 쯤 귀한 술동이를 들고가
큰 붓으로 물가 벼랑에 시를 새기리라
樂水 愼權의 和答詩
요수 신권의 화답시
林壑皆增菜 臺名肇錫佳림학개증채 대명조석가
勝日樽前値 愁雲筆底埋승일준전치 수운필저매
深荷珍重敎 殊絶恨望懷심하진중교 수절한망회
行塵遙莫追 獨倚老松崖행진요막추 독의노송애
숲 언덕은 온갖 빛을 발 하는데
대의 이름 아름답게 지어주시니
좋은 날 귀한 술동이 앞에 두고서
구름같은 시름은 붓으로 묻읍시다
깊고 보배롭고 소중한 가르침
서로 떨어진 한스러움과 그리움
세속에 흔들리며 따르지 못하니
홀로 벼랑가 노송에 기대봅니다
葛川 林薰의 解愁送詩
갈천 임훈의 해수송시
花滿江皐酒滿樽 화만강고주만준
遊人連袂謾紛紛 유인연몌만분분
春將募處君將去 춘장모처군장거
不獨愁春愁送君 불독수춘수송군
강 언덕엔 꽃이 가득하고 동이엔 술이 가득하고
봄놀이 상춘객들도 소매를 이어 분주히 오가건만
봄이 저무는 곳에 그대만이 가려는가
봄을 보내는 시름보다 떠나는 그대가 더욱 시름스럽다오
시냇가 꽃 숲에서 세 분이 술잔을 나누고 시를 주고 받고 우정을 나누는 그림이 있었다면 얼마니 좋았을까?
약속 장소를 십리 지척에 두고도 떠나는 퇴계의 발걸음인들 얼마나 무거웠을까.
지금은 마리면 영승리, 위천면 황산리, 북상면 갈계리로 세 분의 처소가 각기 다른 면으로 나누어지지만 면이란 단위는 일제 이후의 행정구역일 뿐 당시에는 같은 원학골의 윗마을 아랫마을 이었다.
퇴계가 유숙한 영승리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수승대의 경치와 비견될 것은 아니다.
퇴계가 수승대의 절경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다음에라도 큰 붓으로 일필휘지 시를 쓰겠다는 배포 큰 상상의 시만 남기고 가버린 것은 애석한 일이다.
시를 선물 받은 요수는 구름같은 시름(愁)을 붓으로 묻자는 답시를 썻고 새 이름에 고마움을 표하며 이를 바위에 새겼다.
세속의 일은 항상 바쁜 법이다.
요수가 노송에 기대어 후일의 약속을 기다리나 퇴계는 항시 바빴다.
樂山樂水요산 요수!
산과 물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기랴.
신권의 호가 요수임에랴.
歸去來 逍遙遊! (귀거래소요유)!
출사의 뜻을 버리고 낙향해 안빈낙도 수분지족하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요수와 갈천의 장구지대 수승대를 정사에 바쁜 퇴계는 다시 찾아오지 못했다.
갈천은 달랐다.
갈천의 시에는 강언덕에 가득핀 꽃도 보지 않고 술동이에 가득한 술도 나누지 못하면서 개명시만 보내온 것에 대한 실망과 책망의 뜻이 읽혀진다.
봄이야 왔으니까 가는 것이지만 그대는 오지도 못하고 이별을 한단말인가?
不獨愁春愁送君!
짧은 시의 마지막 연에 愁자를 두 번이나 사용하여 구절을 맺었다.
갈천의 愁送臺에 대한 강한 애착이 읽혀진다.
愁送臺란 이름을 누구보다 아꼈나보다.
그래도 갈천과 퇴계의 친분은 각별했다.
갈천은 17세나 어린 막내 아우 첨모당 임운을 안동 도산서원 퇴계에게 유학을 보냈다.
명종이 승하하고 새로이 등극한 선조가 친히 갈천을 대궐로 불러 정사를 물으메, 퇴계 이황을 가까이두고 가르침을 받으라고 간언했다.

수송이란 이름이 신라와 백제의 사신이 오갈때 위험한 여행길 근심을 함께 보냈다는 설이 있는데 의미가 있다.
근심 걱정 시름이 어찌 떠나는 사신에게만 있겠는가.
누군들 꽃피는 댓바위 그늘 흐르는 물소리에 시름 따위를 잊고 싶지 않겠는가.
물길을따라 200여m 인접한 남쪽에 滌愁臺(척수대)가 있다.
시퍼런 강물을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린 절벽위에 수백년 나이의 노송이 숲을 이룬 이곳 역시 범상치 않은 곳이다.
그 또한 시름을 씻어버린다는 고상한 이름이니 수송대와 척수대는 세트이다
이름에 얽힌 스토리텔링이 있어 더욱 멋들어진 고장의 명승 보물이다.
수승대도 수송대도 나무랄데 없이 다 좋은 이름이다.
빼어난 으뜸의 경치란 뜻도 좋지만, 근심 걱정 온갖 시름을 잊게한다는 뜻에 더 깊은 오묘함이 느껴진다.
수송이란 이름으로 바뀌어지면 처음엔 약간 어색하겠지만 이내 익숙하게 될 것이다.
山高水長!
덕유산은 높고 원학골의 물길은 유장하다.

*여기 사진들은 이번 추석 귀향길에 담아온 미건 오병철 작가님의 따끈따끈한 작품이다.
미건선생은 거창군 마리면 시목 출신이다.
작품 사용을 許해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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