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 (인생)

최순sir박ㄹ혜 사건을 보는 소회

임공이산 2016. 12. 14. 22:07

 

 

 

 

 

 

 

 

 

 

 

 

 

                      최순sir박ㄹ혜 사건을 보는 소회

 

 

 

 

 

 

 나비효과라 했던가.

도박자금과 편의를 제공하는 조직폭력배의 정킷방에 포착된 운동선수와 100억대 도박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대표로 출발한 사건은, 최유정변호사와의 수임료 다툼이 전관예우 홍만표변호사가 연결되고, 넥슨과 진경준검사장이 겹치고, 우병우의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으로 비화되더니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이르렀다.

이른바 최순실게이트로 진화한 사건은 박근혜의 꼼수사과와 개헌이란 묘수로 일단락되는 듯하다가 JTBC의 테블릿PC 발표로 최순sir박ㄹ혜게이트로 발전했으니 그 사이에 정유라의 이화여대특례입학과 평창올림픽 재벌특혜 전경련 박근혜7시간의 의혹 등이 얽히고설키고 짧은 기간에 수많은 뉴스가 정신없이 쏟아졌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뉴스가 나오고 있다.

성실히 조사를 받겠다던 박근혜대통령은 약속을 팽개치고 모르쇠작전에 들어가므로 대면조사 한 번 못한 체 검찰수사는 끝이 났다. 그러나 국회 청문회와 박영수특검을 통해 더 많은 사실과 진실들이 밝혀질 것이다.

 

2016년 12월 9일에 박근혜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투표결과 찬성234 반대56 기권1 무효7 불참1로 통과되었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남아있지만 국민의 뜻에 국회가 따랐듯이 헌재 역시 국민의 뜻을 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국민의 뜻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촛불시위로 나타났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과 전국 곳곳에서 7차에 걸친 수백만 촛불의 행진은 아름답고 장엄했다.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어찌 저토록 무능하고 부패하고 타락하고 추악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나?

무엇이 51.6%의 지지를 얻게 했으며 대통령이 되고서도 비선과 함께 3년이 넘도록 극에 달하는 국정을 농단했나?

우리시대의 무지와 치부와 모순이 농축된 핵덩어리가 바로 박근혜이다.

몇 살의 차이가 나지만 동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참담하기 그지없는 자괴감의 소회를 졸글로써 남겨본다.

 

 

 

10 살의 나이에 쿠데타로 집권한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로 들어간 그녀는 이후 김재규의 거사로 박정희가 숨지기까지 공주로서 퍼스트레이디로서 특별한 삶을 살았다.

최태민은 박정희의 복심을 뚫어본 인물이다. 종신집권의 야욕을 품은 박정희와 내심으론 꿍짝이 맞았다. 박정희 이후의 세습까지 플랜에 들었을 것이다.

박정희가 피습 당하고 유신의 종말을 맞기까지, 18년 동안을 최고 존엄 권력위에 군림하고 체험하고 학습하면서 인성과 인격이 형성되었다.

불가피 청와대를 떠난 야인생활 18년은 최태민 일족과 함께 권토중래를 도모했다. 일생 중 가장 지루했을 그 시절에 전두환과 신군부의 흥망과 성쇠도 보았고 타오르는 시민혁명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민주주의를 공부하지 않았다. 부친 박정희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녀의 꿈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박정희의 재건과 부활이었다.

 

46 살에 입문한 정치가도는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순조로웠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향수를 그리던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30%를 상회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생겼다. 일편단심으로 맹종하듯 따르고 응원하는 펜들도 적지않아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5선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입법 활동은 거론조차 부끄러운 낙제점이었으나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헷갈리는 웅변에 수첩이 없이는 말 한 마디 못해도 육영수식 헤어스타일 코스프레만하면 몰려온 대중들은 감동했다. 무개차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잔잔한 미소로 손만 흔들면 통했다. 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당을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었다.

어느 사이 선거의 여왕이란 닉네임이 붙었다. 당권과 대권후보싸움에서 이회창과 이명박에게 패배를 당하기도 하나 재수의 도전 끝에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가 되고, 문재인야당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이되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비롯하여 부정선거의 정황이 도처에서 발각되고 사이버 선거부대까지 동원했다는 혐의가 있었으나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최순실의 요상한 오방색 퍼포먼스 속에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 18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국정능력의 문제점과 인사 부실이 출발부터 나타났다.

초대총리 김용준 후보는 청문회 검증과정에서 비리의 백화점임이 드러나 낙마했고, 전관예우논란의 안대희와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문창극도 낙마했다. 짐을 쌌던 정홍원총리는 국정사상 처음으로 연임이 되는 해프닝이 있었고 성완종사건에 연루된 이완구는 70일 만에 물러났다.

한미정상회담의 일행이었던 대변인 윤창중의 성추행사건은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스러운 국제적 망신을 샀다.

아집과 불통은 끝이 없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친박 진박 공천을 밀어붙이다가 대구지역에서도 역풍을 당했다.

 

 

최악의 재앙은 세월호이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을 위해 탑선한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가 진도앞바다에서 침몰했다.

현재 사망295명 실종 9명으로 기록되어있는 이 사건은 아직도 의혹투성이다.

최초 구조요청도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했으며 침몰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내보내고 정작 선원들은 탈출했다.

언론에는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뜨고 현장에 출동한 해경은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다. 전 국민들이 화면 속 기울어가는 배를 바라보며 애를 태웠지만 관련기관들은 우왕좌왕했으며 콘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나마 주변의 어선들이 물에 빠진 승객들을 구조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모습은 사건발생 7시간이나 지나서야 중앙대책본부에 나타났으며 TV화면 한 번 보지 않은 사람이나 할 엉뚱한 소리와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상식 밖의 발언을 했다.

가식적 악어의 눈물쑈를 벌이고 한참이 지난 후 국무회의를 통한 사과는 진정성이 없었다. 안산시 합동분향소에서 가짜 유족 할머니와 연출한 거짓 조문극이 탄로 났다. 변명을 할수록 네티즌과 유족들이 찾아내는 증거로 인해 부도덕이 들어났다.

쟁점을 돌리고 요점을 흐리는 언론플레이를 벌였다.

종편과 지상파는 종일 유병언 가십과 구원파 이야기로 떠들었다.

구조에 만전을 기울이고 유족들의 뜻을 받들고 언제든 만나겠다던 약속은 팽개쳐버렸다.

항의하는 유족들을 좌파로 몰고 앞장서는 사람들은 사복경찰이 미행하고 겁박했다. 합당한 보상은커녕 보상금이나 노리는 후안무치한 사람들로 매도했다. 세월호특별법을 무력화시키고 특위활동은 방해했다. 국회도 일부역할을 하겠다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배신자로 몰아 사퇴시키고 공천에서도 탈락시켰다.

구조활동의 여파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민간 잠수사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 피폐해진 생활을 견디지 못한 김관홍 잠수사는 삶의 끈을 스스로 놓았다.

 

2015년 5월 또 한 번의 재앙이 초래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사태는 박근혜정권의 위기관리능력의 무대책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보안유지에만 급급 하는 사이에 골든타임을 놓쳤고 걷잡을 수 없이 감염자가 확산되었다.

다행히 박원순서울시장의 용기 있는 판단으로 정보가 공개되고 조치가 취해졌다.

이재명성남시장, 염태영수원시장도 시민들과 힘을 합해 전염경로와 환자 발생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었다.

치사율 20%가 넘었던 메르스는 38명의 사망자를 내고서 그해 11월 말 최종 종식되었다.

손 씻기만 하면 예방된다고 했던 박근혜대통령은, 낙타를 조심하라는 희한한 예방책과 호흡기로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했던 당시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최근 국민연금관리공단이사장에 임명했다.

 

대선 때 박근혜후보가 내걸었던 슬로건은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 꿈이라는 무서운 마각이 교과서 국정화로 들어났다.

여론의 반대와 논란을 무릅쓰고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이유는 이승만을 국부로 박정희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미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상해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친일과 친미를 숭상하고자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했다.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포장하고 군사독재와 유신통치를 미화시켰다.

박정희의 탄생백주년이 되는 내년을 대비해 국고를 쏟아 붓는 대대적 행사를 기획했다.

불온한 일련의 작업들에는 뉴라이트와 친일 친미세력과 일부 보수언론도 합세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굴욕적인 ‘일본군위안부합의’까지 체결해버렸으니 참으로 비분강개할 일이다.

 

한편 북한의 김정은정권은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과 핵실험을 했다.

약발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안보위기론과 종북타령은 여전히 실정을 덮거나 필요할 때 마다 써먹는 약이다.

북한의 도발과 철권통치를 대북강경정책의 구실로 삼았다.내란음모 혐의로 통진당을강제해산시키고 이석기의원을 구속했다.

남북 간 최소한의 완충지대요 산업교류의 교두보인 개성공단을 전격적으로 폐쇄하고 철수시켰다.

날벼락을 맞은 입주기업의 보상이나 대책은 없다.

국민총궐기대회에 참여했던 백남기농민이 살인물대포에 희생이 되었다.

폭력시위혐의로 민주노총의 한상균위원장을 구속시켰다.

성주읍내에 고고도 미사일방어체제 사드배치를 발표했다가 지역민의 거센 저항에 부닥치자 장소를 외곽으로 변경했다. 이로 인해 중국과 마찰을 빗고 경제보복을 당하고 있지만 대책은 없다.

철학이 부재한 리더에겐 간신들만 득실 되게 마련이지만 충신들도 있었다.

조응천 박관천 최경정 같은 훌륭한 이들은 옳은 일을 하고도 쫓겨나고 죽임을 종용받았다.

 

혹독하고 비싼 대가를 치루고 있지만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민주주의의 나라에서 주인 노릇 잘 못하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근혜 최순실로 끝 날일이 아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군림하는 케케묵은 적폐들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개 돼지 취급을 받으면서 지배를 당할 것이다.

올바른 민주주의 시민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아직도 박정희 같은 독재자를 반신반인으로 추앙하는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면, 아직도 지역프레임에 갇혀서 네 편이냐 내편이냐 부터 따진다면, 아직도 내심으로 샤이박근혜 샤이박정희에 속한다면, 아직도 진실이 부담스러워 한다면, 아직도 ‘친구아이가’에 소중한 한 표를 던져버린다면........

오욕의 역사는 되풀이 될 것이다.